[츠카레오] Noblesse Oblige

mae_ngtl 2025. 3. 17. 22:03

 

 

25.1 디페 무료 배포 회지 / 냥여우AU


 

 

낮은 언덕 위, 커다란 나무 그늘 아래.

얼굴 위를 덮은 모자로 한낮의 햇빛을 막은 스오우 츠카사가 한 쪽 팔을 베고 누워 있다. 제가 멀찍이서 지켜본 바로는 일정한 속도로 가슴팍이 오르내린 게 한참이니, 답지 않게 달콤한 낮잠을 즐기고 있는 게 분명했다.

"근무 시간일 텐데 태평하게 낮잠이나 자고 있다니. 빠졌군, 스오~"

수풀 속에 몸을 숨긴 레오가 신이 나서 꼬리를 살랑댔다. 고양이 총사님이 얼마 전 여우와의 교류에서 크게 공을 올린 것에 취했는지 제 임무를 저버리고 태평하게 뻗었으니, 그의 동업자와 다름없는 저라도 나서서 그를 살짝 혼내 주어야겠다 싶었다.

레오는 최대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나지 않도록 천천히 수풀 속에서 몸을 일으켰다. 분명 작게나마 인기척이 느껴졌을 터인데, 모자에 반쯤 가린 귀는 쫑긋거리는 모양 없이 잠잠하다. 들키지 않았음을 확인한 레오가 천천히 츠카사에게 걸음을 옮겼다. 한 발 한 발, 가까워질 때마다 잠에 빠진 숨소리가 점점 크게 들려왔다. 날렵한 코 위로 걸쳐 올라간 모자가 숨소리에 맞춰 천천히 들썩거리기를 반복한다. 색색거리는 규칙적인 숨소리. 제가 다가가는 줄은 아마, 꿈에도 모르고 있겠지. 골려주면 놀라서 잔뜩 치켜 올라갈 눈썹과 동그랗게 커질 눈, 제 머리카락처럼 붉어질 얼굴을 상상하자니, 금방이라도 킥킥 웃음이 샐 것만 같았다.

 

츠카사의 곁으로 가까이 다가간 레오가 그의 머리 위로 쪼그리고 앉았다. 대충 묶은 주황빛 머리카락이 아래로 떨어지며 금방이라도 츠카사의 얼굴을 간지럽힐 듯 일렁거렸다. 비식비식 웃음이 새려는 입술을 꾹 눌러 다물고, 두 손을 올려 모자를 잡아챌 준비를 한다. 숨소리는 여태 고요하고, 가슴이 천천히 올라갔다, 내려가기를 반복한다. 모자를 채며 스오! 하고 부르면 놀란 얼굴이 우왓, 하며 커다란 비명을─

"레오 씨."

"우와앗─!!"

하지만 정작 레오가 기대했던 비명은 예상과는 다른 곳에서 터져 나왔다. 갑작스레 들려온 목소리에 놀란 그는 츠카사를 골리려 올렸던 손을 내려 네 발로 바닥을 짚은 채로, 볼썽사납게 뒤로 구르듯이 물러났다. 그 우스꽝스러운 소리에 츠카사가 모자 아래로 웃음을 터뜨렸다. 풋, 푸흡─ 여전히 얼굴을 덮은 모자가 들썩들썩, 붉은 머리칼 위의 뾰족한 귀가 즐겁다는 듯 연신 번갈아 쫑긋댄다.

"너, 너! 자는 거 아니었어!?"

순식간에 얼굴이 붉어진 레오가 비명과도 같은 소리로 따졌다. 츠카사는 그 격양된 목소리에도 참지 못 한 웃음을 터뜨리며, 제 손으로 얼굴을 가린 모자를 걷어냈다. 아, 당신은 정말이지, 순수하네요. 그렇게 말하는 눈가로 찔끔 눈물이 매달려 있다.

츠카사는 벗어뒀던 모자를 다시 머리 위로 바르게 눌러쓰고, 내내 누워있던 몸을 일으켰다. 재차 단정하게 정돈된 고양이의 모습과는 다르게 여우는 여전히 우스운 모습으로 흙바닥에 몸을 붙인 채다. 바닥에 널브러진 채 연신 저를 위로 흘겨보는 레오의 겨드랑이 밑으로 츠카사가 천천히 손을 밀어 넣었다. 힘을 주어 몸을 들어 올리면 순순히 기대 오는 이를 익숙하게 갈무리해 옮긴다. 어깨 위로 고개를 기대면서도 화가 풀리지 않았는지, 귓가에 들리는 숨소리 위로는 씩씩대는 소리가 잔뜩 섞여 든 채다.

"웃지 마! 너 분명, 내가 저기서 얼마나 보고 있었는데!"

"어라, 이제 안 웃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들켰나요?"

"믓, 누가 봐도 웃고 있잖아!?"

억울하다는 듯 따지는 목소리와 쿡쿡 웃는 목소리가 우스운 화음으로 섞인다. 츠카사는 레오를 안은 채 바닥에 넓게 깔린 천 위로 자리를 옮겨 앉았다. 품에 안긴 이는 잔뜩 화를 내는 것 치고, 츠카사가 자세를 고쳐 안을 때도 애완 여우처럼 아주 얌전하다. 그런 레오가 우습고 잔망스러워서, 츠카사는 부러 그에게 놀리듯 한 마디를 얹었다.

"당신이 뒤에 있는 것 같길래 골려주려고 자는 척을 좀 해 봤어요. 어떠셨나요, 제 연기는?"

장난스레 묻는 말에 꽤 분했다는 듯, 커다란 여우의 귀가 아래로 처졌다.

"전혀. 재미없었어. 최악. 스오는 연기에 재능 없으니까, 앞으로는 하지 마."

그렇게 말하는 입술이 왠지 모르게 불퉁하다.

꽤 오랜 시간을 알고 지냈는데도 레오는 여전히 츠카사에게 거짓말을 하거나 표정으로 감정을 숨길 생각을 하지 못 했다. 투명하고 순수한, 날것의 존재.

츠카사는 잇새로 다시금 삐져나오려는 웃음을 삼키고, 대신 뾰로통하게 튀어나온 레오의 입술 위로 쪽 소리가 나게 입을 맞췄다. 이익, 하지 마! 아직 화가 가시지 않은 레오가 팔다리를 휘적거리며 츠카사를 밀어낸다.

"왜요? 스킨십, 좋아하시잖아요?"

아닌 척 구는 팔다리를 가볍게 눌러 제압한 츠카사가 레오의 얼굴 위로 쪽쪽 입술을 붙였다. 그런 거, 아니, 거든? 뱉어내는 말이 입술에 막힐 때마다 뚝뚝 끊기는 것과는 다르게, 싫다고 말하면서도 손톱을 세우거나 이빨을 드러내지는 않는다. 이제 와 경계하고 공격하기에는 너무 오랜 시간을 붙어먹은 탓이다. 반면 입술이 맞붙은 곳곳은 쪽쪽 소리가 반복될 때마다 조금씩 붉어지는 것도 같다. 

"제가 이렇게 하면, 손도 타시면서."

"읏!"

하지만 그런 것과는 별개로, 예고 없이 배 위로 들이닥치는 손바닥에는 저도 모르게 짧은 신음이 샜다. 드러난 맨살 위로 장갑 낀 손의 감촉이 꺼끌꺼끌 불쾌하게 닿아왔다. 그 느낌에 절로 긴장한 뱃가죽이 홀쭉하게 달라붙는다. 레오는 이럴 때마다 배를 채 가리지 못하는 제 옷이 야속했다. 얄미운 손을 피하지도, 제 긴장을 감추지도 못 하니 말이다. 저도 똑같이 돌려주고 싶어 분주히 손을 놀려 보지만, 꽁꽁 싸맨 고양이의 옷은 틈새로 레오의 손바닥은 고사하고 손가락 하나도 쉽게 허락하지 않았다. 웃으며 재차 배를 쓰다듬는 손이 얄밉기 짝이 없다.

"하지 마! 이래서 고양이들이란!"

레오는 두 번이나 제대로 당하고서야 뒤늦게 츠카사의 위에 앉아 있던 몸을 물렸다. 놀려 주려다가 제가 놀림당한 것도 분한데, 그에게 주도권을 뺏기는 것은 더더욱 분했다. 분명 처음 만났을 때는 저한테 꽤 쩔쩔맸던 것 같은데 어린 고양이 아니랄까 봐, 주제에 성장 속도가 빠른 건지 뭔지. 건방져도 너무 건방졌다. 불만 가득한 꼬리가 잔뜩 털을 부풀린 채 탁탁 바닥을 쳐댔다.

"그렇게 맨살이 닿는 게 싫으시면 옷을 갖춰 입으면 되잖아요?"

그렇게 묻는 츠카사는 그가 총사임을 방증하는 제복, 모자, 부츠는 당연하고, 제복 위로 허리를 두른 벨트와 장갑과 평소에는 허리춤에 차고 다니는 검집까지 가지런하게 옆으로 놓여 있다. 레오는 그런 츠카사의 말이 나오자마자 싫다는 듯 인상을 팍 찌푸렸다. 여느 때와 같은 익숙한 반응이다.

"싫다고 했잖아. 불편하고, 거추장스럽고. 하여간 고양이들은 고상하시다니까. 어차피 너나 나나 짐승인데. 그렇게까지 차려입고 예의 차릴 필요가 뭐 있어? 이런 천도 마찬가지고 말이야."

레오는 그렇게 말하며 제 엉덩이 아래에 깔린 천을 팔락댔다. 몸에 흙 좀 묻는 게 어때서. 투덜대는 말이 덤으로 따라온다.

그가 불만스럽게 팔을 들출 때마다 가슴팍 위를 아슬아슬하게 가린 볼품없는 천이 들썩거리며 아래의 맨살을 드러냈다. 그 품위 없고 경박한 모습에 츠카사의 눈이 절로 가늘어졌다. 그가 자유로운 호(狐)인인 것은 물론 알고 있지만, 저로서는 이런 얄팍한 옷은 아무래도 불만일 수밖에 없었다. 가볍게 손을 대기만 해도. 아니 그 이전에 바람만 살랑 불어도 맥없이 그 아래의 부드러운 살갗을 드러내고 말, 의복이라 칭할 수도 없는 천 조각. 츠카사는 이런 경망스러운 꼴로 다른 사람의 앞을 팔랑팔랑 돌아다닐 레오를 생각하자면 이유도 모르게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기분이었다. 이것도 그들이 오래 붙어먹은 탓인지는, 저로서는 알 수 없었다.

 

종족을 왕국이라는 틀로 묶어 그 안에 법률과 질서를 마련하고, 선진화된 문물을 받아들인 묘(猫)인들과는 다르게, 레오와 같은 호인들은 워낙 자유로운 성정 덕분에 그런 문명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산다. 기본적이고 암묵적인 규칙 외에는 법이랄 것 없이 야생에 가까운 삶을 사는 그들이기에 레오가 이깟 천을 걸치고 다니는 것도 제가 왈가왈부할 것은 아니라지만, 츠카사는 만남을 거듭할수록 그의 행색을 제 마음껏 뜯어고치고 싶다는 생각을 멈출 수가 없었다.

누구에게든 반말을 툭툭 내뱉는 것이나 교양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행동거지 따위는 차치하더라도, 츠카사는 레오가 여기저기서 촐랑대고 다니기 이전에 우선은 그의 매무새부터 손을 대고 싶었다. 단정한 정장이나 제복같이 거창한 옷이 아니더라도 최소한 옷다운 것을 걸치게 하고 싶었다.

"물론 당신이 입고 있는 것에 비하면 불편하고 거추장스럽겠죠. 하지만 레오 씨, 이렇게…."

"잠, 잠깐, 스오!"

츠카사의 손이 거침없이 레오의 등을 파고들었다. 천 위를 제 나름 고정한다고 한 벨트는 손쉽게 풀어 옆으로 던지고, 역할을 해내지 못 하는 천 아래로 침범한 츠카사의 손가락이 레오의 옴폭 패인 등줄기를 더듬는다.

"아, 스오, 하지 마. 간지러워…."

금세 둥글게 말린 몸으로 레오가 움찔댔다. 등에서부터 퍼진 간질간질한 감각에 자꾸만 발가락 끝이 곱아들었다. 커다란 여우의 귀가 아래로 축 쳐지고, 털이 풍성한 꼬리가 꼼질꼼질 말려들어 맞닿은 옷 위를 간지럽힌다.

츠카사는 레오의 척추뼈를 천천히 더듬고 올라간 손 그대로 야생동물을 채듯 그의 목덜미를 잡았다. 히익─! 순식간에 뒷덜미를 잡힌 레오가 딱딱하게 몸을 굳힌다. 순식간에 귀와 꼬리를 곤두세우고 잔뜩 긴장한 꼴이 포식자 앞에 선 초식동물과 다를 바가 없다.

"봐요. 고작 이 정도로도 잔뜩 굳었잖아요. 제가 알기로 여우는 육식동물이 아니던가요? 그런데 고양이 앞에서 생쥐처럼 잔뜩 질려서는."

아닌 척 이죽대는 츠카사가 레오에게 가까이 고개를 붙였다. 움츠러들어 바들대던 여우는 고양이의 얼굴이 가까워지자 자연스럽게 평소처럼 이다음에 이어질 키스를 기다리듯 눈을 질끈 감았다.

농밀한 접촉을 바라고 있는 레오의 입술을 피한 츠카사가 훤히 드러난 그의 목덜미에 입을 맞췄다. 가벼운 소리가 대낮의 언덕 위를 낯부끄럽게 울린다. 쪽쪽 소리를 내며 붙은 입술이 살짝 붉어진 볼과 이마 위로도 순서대로 이어졌다. 앙다물어 힘이 들어간 턱 위로도, 노을빛을 한 머리칼 위에도. 

가볍게 붙었다 떨어지는 입맞춤에 흥분을 돋우는 의도보다는 장난기가 다분한 것을 느꼈는지, 긴장으로 잔뜩 올라갔던 레오의 어깨에 힘이 풀렸다. 명백하게 놀림당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자, 순간 속에서 울컥 짜증이 차올랐다. 순순히 아래로 내려갔던 짤막한 눈썹이 치켜 올라간다. 번뜩 뜬 눈으로 질세라 이채가 돌았다.

"스오, 너, 이 자식…!"

직전까지 티 나게 당황하던 것을 아닌 체하며, 레오가 날카로운 짐승의 이빨을 드러낸다. 어쩌다 이렇게까지 고양이에게 놀림 받는 포지션이 되어 버린 건지, 알 수가 없다. 레오는 이번에야말로 오래 봤다고 봐주는 것 없이 그를 왕창 깨물어 버릴 심산이었다. 친해졌다고 생각해서 이빨은 세우지 않기로 마음먹었건만. 이렇게 된 책임은 모두 츠카사에게 있다.

약육강식의 야생은 당하고만 있자면 절대 역전되지 않는다. 약자로 낙인찍히는 순간 도태되는 것이 험난한 야생이다. 그러니 그에게 제가 얼마나 무서운 육식동물인지 알려 주어야 했다. 이대로라면 어린 고양이에게 잡아먹힐 것은 불 보듯 뻔한 결과였다.

 

하지만 날카로운 여우의 송곳니가 또다시 고양이의 피를 보는 것보다, 츠카사가 레오의 볼 위에 맞붙은 입술 새로 이를 세우는 게 더 빨랐다.

"아야!"

볼 위로 느껴진 따끔함에 레오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나 지금, 스오한테, 물린 건가?' 당황이 잔뜩 묻은 채, 연신 데굴데굴 구르는 눈동자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그래, 분명 놀랐을 테다. 항상 품위 없이 이빨을 드러내고 으르렁 대는 쪽이다가, 불시에 역으로 당하면.

아무래도 레오에게는 의복의 문제를 지적하는 것보다도 이렇게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야생의 본능을 잠재우는 법을 먼저 가르치는 게 맞는 순서인 듯했다. 츠카사는 잔뜩 당황한 얼굴의 레오를 두고 짐짓 모른 척을 하며 몸을 물렸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딴청을 피우며, 부러 구겨진 옷매무새를 정돈했다. 약육강식을 알려 주려다 되려 호되게 당하기만 한 여우의 얼굴이 화창한 날씨에는 어울리지 않게 다시금 붉게 달아오른다. 호흡 위로 씩씩대는 거친 소리가 섞여 들었다.

"므읏…! 스오, 너 가만 안 둬!"

레오가 질세라 츠카사에게 달려들었다. 밀어붙이며 쓰러뜨리는 힘에 두 인영이 함께 풀썩 뒤로 넘어간다. 독이 잔뜩 오른 여우가 다시금 고양이의 배 위를 깔고 올랐다. 종전까지 붙어서 쪽쪽대던 것과는 반대로, 자칫하면 피를 볼 기세다.

이빨 빠진 애완 여우처럼 굴던 것은 그만두고, 야생에서 갈고 닦은 사냥 실력을 보여줄 때였다. 문명의 달콤함에 빠져 검이니 총이니. 그런 시시한 것 따위에 의지하는 거만한 고양이에게 날카로운 발톱과 이빨이 얼마나 단단한지, 얼마나 간단하게 살갗을 찢어낼 수 있는지 알려 주어야 했다.

"으븝!"

하지만 들이댄 이빨은 제 볼을 눌러오는 츠카사의 손바닥에 의해 쏙 들어갔다. 꽁꽁 싸매고 있던 장갑은 언제 벗은 것인지, 볼 위로 거부감 드는 가죽의 거친 감촉이 아닌, 부드럽고 따뜻한 체온이 닿아왔다. 이어서 볼살 사이로 우스꽝스럽게 모인 입술 위로 뒤늦게 주어지는 입맞춤. 기어코 맞닿은 열기에 내내 불만이던 감정이 사르르 녹아내리는 듯한 기분. 아, 이제껏 츠카사의 행동이 뭐가 그리도 불쾌하고 짜증 나는가 했더니, 이 중독적인 달콤함이 없어서 그랬었나 보다.

본디 야생동물이라면 달콤한 디저트보다도 새빨간 짐승의 고기를 맛보는 게 더욱 황홀해야 하고, 맞붙은 인간의 체온보다는 몸 위로 둥글게 말아 덮은 꼬리의 털이 더욱 따뜻해야 망정이건만, 이 발칙한 총사님은 그럴 생각도 없는 저를 자꾸만 불쾌한 문명의 세계로 이끌어 댔다. 제게는 하등 쓸모없는 문명이나 문물 따위 분명 거추장스럽고 불편해야 망정인데도, 레오는 자꾸만 츠카사를 보고 있자면 가슴이 요동쳐서 그를 밀어낼 수가 없었다. 그가 예쁜 목소리로 설명하는 온갖 것의 이름이 노래처럼 아름다워서, 쓸모없는 장신구의 뒤로 딸려 오는 '예뻐요'라는 말이 너무 마음을 울려 대서. 레오는 자꾸만 이런 무뢰배 같은 입맞춤조차도 밀어내지 못 하고 응하게 되어 버렸다. 이런 거, 버릇이 들면 야생으로 돌아갈 수 없을 텐데. 피어오른 마음속 불안의 불씨는 금세 츠카사가 밀어 넣은 타액으로 적셔져 꺼진다.

 

레오가 세웠던 발톱을 감추고 뒷덜미에 팔을 걸면, 츠카사가 순순히 그의 볼을 잡고 있던 손을 놔 주었다. 둘 사이로 거슬리던 것이 없어지자, 비벼지던 입술은 더욱 깊숙하게 맞물린다.

혀가 질척한 소리를 내며 문질러지고, 얽히고, 떨어지기를 반복했다. 츠카사는 부러 제게 들이밀던 레오의 얄미운 이빨의 위를 훑듯이 더듬었고, 그럴 때면 레오도지지 않고 짓궂게 이를 세워 물컹한 살덩이를 잘근잘근 씹었다. 맹수의 이빨 아래에서 짓뭉개지는 츠카사의 혀가 이제껏 맛본 어떤 고기보다도 고소하고, 어떤 열매보다도 달콤한 극상의 맛을 낸다. 자칫 혀가 녹아버릴 것만 같았다. 키스할 때마다 혀를 씹는 것이 나쁜 버릇이 될 것만 같다고, 츠카사에게 매달린 레오가 열기 오른 머리로 떠듬떠듬 생각했다.

얄팍한 옷의 아래로 츠카사가 부드럽게 손을 밀어 넣는다. 허리와 이어지는 갈비뼈 부근을 천천히 쓰다듬는 그 움직임이 너무 자연스러워서, 혹은 주어지는 입속과 혀가 너무 달아서, 한참 지적할 생각조차 못 한 손놀림이 거침없이 가슴 위로 올라왔다. 그 감각에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손끝이 가슴 위를 농밀하게 문지르다 뭉개듯 눌러오는 것에, 처졌던 여우의 귀가 곤두섰다. 응, 응. 맞붙은 입안으로 앓는 소리가 먹혀든다.

원체 본능에 기인해 살아온 탓인지 여우는 자극에 예민했고, 상을 주듯 부드럽게 몸을 쓰다듬자면 대부분 참지 못 하고 매달려 왔다. 츠카사가 납작한 가슴을 짓누를 때마다 품속의 몸이 파르르 떨려댄다. 어느새 떨어진 입술에서 아, 아 작게 앓는 소리가 샜다. 그것이 귀여웠다. 잔뜩 야생이니 뭐니, 저는 육식동물이라며 으름장을 놓더니, 정작 손을 대면 파르르 떠는 토끼 같은 모습이 되는 것이.

"싫으면 싫다고 말해요."

헐거운 레오의 바지 안으로 츠카사의 손이 들어갔다. 혹시나 해서 한 말이었지만, 상대는 제 엉덩이를 쥐어오는 손에도 거부는커녕 스오, 스오. 달콤한 목소리로 저를 찾아대기에 바쁘다.

열이 오른 여우의 손이 분주하게 고양이의 옷깃을 더듬는다. 필사적으로 파고들 틈을 찾으려는 다급한 손이 연신 제복을 훑고 미끄러지기를 반복하다, 간신히 겉옷의 어깨를 걷어냈다. 츠카사는 그 경박하고도 순수한 손짓에 다시금 푸흐흐, 웃는 소리를 내며 레오를 더듬었다. 제대로 된 의복도, 예의도, 품위도. 뭣 하나 갖춘 것이 없는 이 어여쁜 여우를 어떡하면 좋을까.

 

위대한 스오우 가문의 가훈 중 하나로 '노블레스 오블리주'라는 말이 있다. 부와 권력, 명성을 가진 이는 책임 또한 함께 져야 한다는 뜻이다.

츠카사가 오랫동안 되새겼던 그 가르침에 따르면, 여태껏 최고의 교육을 받고 좋은 것만 취하며, 강인하고 똑똑하게 성장한 저는 가진 것 없고 무지한 짐승에게 가르침을 주는 것이 마땅한 의무일 테였다.

교양도 지식도 부족한 레오가 어딘가에서 다른 이에게 촐랑대다가 호되게 당하지 않도록, 그가 기본적으로 가져야 할 교양과 덕목을 배울 수 있도록 위대한 스오우 가문의 가호 아래서, 제 품속에서 보호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츠카사는 분명 그것이 깨어있는 귀족이자, 장차 스오우 가문을 이끌어 나갈 차기 가주로서 가져야 자세일 것이라 확신했다. 그리고 누군가 제게 그것을 감수할 것이냐고 묻는다면, 기꺼이 귀족으로서 '그렇다'고 대답할 테였다.

그럴듯한 귀족의 의무를 진 츠카사가 레오에게 다시금 입술을 내린다. 품속의 여우도 바르작대며 츠카사의 등을 끌어안았다. 빛나는 가호 아래에서 얽힌 두 혀가 제자리를 찾은 듯, 질척하게 맞물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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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월 디.페스타에서 무료로 배포했던 회지입니다. 이틀 만에 휘갈겼던 미숙한 돌발본이니 만큼 웹에서도 무료 공개합니다...

마지막 부분 츠카사가 말하는 '어여쁜 여우'는 현대국어보다는 고대국어에 가까운 의미를 가진다는 주저리를 덧붙이며 마무리합니다.

츠카레오 포에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