츠카레오 전력 120분, 주제 <악몽>
왼손에 쥐어진 펜을 끊임없이 놀리는 와중에 오른손으로는 한 손가락을 지휘하듯 들어 바쁘게 허공을 갈랐다. 가사 없는 흥얼거림이 꽤 크게 승강장에 울려 퍼졌다. 츠카사는 저 멀리서 한창 심취한 채 작곡하는 레오를 바라봤다. 귓가에 들려오는 목소리나 흔들거리는 몸짓에 맞춰 우쭐거리는 머리칼이 이렇게나 생생한데. 그를 붙잡거나 말리지도 못한 채 멀찍이서 바라볼 수밖에 없는, 벌써 몇 번이나 반복해 온 지독한 악몽이다.
츠카사는 이것이 모두 제가 그날의 일을 수없이 곱씹고 상상한 탓에 꾸는 꿈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았다. 현실에서는 제 두 눈으로 본 적도 없는, 망상과 망상이 덧대어져 편집된 영상에 불과한 악몽.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속에서는 너무도 생생하게 온몸, 온 감각으로 느껴버리고 마는 것이다.
─쾅 하는 소리와 일어나는 폭발. 순식간에 승강장을 가득 메우는 연기와 비명. 여기저기 튀어 오르는 잔해 사이로 부스러지는 노을빛을.
"레오 씨!!"
연이어 터지는 폭발 소리가 츠카사의 처절한 고함 위로 덮였다. 멀리서 레오의 몸이 힘없이 옆으로 넘어가는 모습이 슬로우모션 마냥 보였다. 지휘하며 곡을 써 내리던 두 손이 찬 바닥 위로 힘없이 툭 떨어졌다. 그가 쓰던 악보는 절반은 불에 타 재가 되어 사라지고 남은 절반은 하늘하늘 바람을 타고 떨어져 레오의 몸 위로 쌓였다. 마치 시체 위로 덮이는 천처럼.
“레오, 씨…!“
억지로 소리를 내는 목울대와 쿵쿵 뛰어대는 심장이 무언가로 쥐어짜는 것처럼 조여왔다. 사방에서 사람들이 뛰쳐나와 레오의 어깨를 쥐고 흔들고 그의 몸뚱이를 다급하게 들것에 싣는다. 츠카사는 그 끔찍한 모습을 흐려지는 시야 사이에서도 끝까지 눈에 담았다.
엎드린 몸이 옅게 움찔거렸다. 쪽잠을 자느라 흐려졌던 정신이 점차 돌아오자 삐- 삐- 소리를 내는 기계음이 덩달아 귓가를 울렸다. 눈을 뜨고 고개를 들면 당신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그 녹음을 담은 눈으로 저를 바라보고 있길. 수 없이 했던 기도를 속으로 되뇌며 고개를 든다. 바람과는 달리, 여전히 죽은 듯이 숨만 쉬고 있는 레오가 보였다.
작곡하고 있던 레오가 폭발에 휘말려, 의식불명 상태인 지도 어느덧 몇 달이었다. 레오는 스오우 가문의 이름과 재력 아래 모인 최고의 의료진에도 위험한 고비를 넘겼을 뿐이었다.
정작 아프지 않은 이는 악몽에 시달리느라 제대로 잠을 취하지 못한 채 뻑뻑한 눈을 끔뻑이고 있는데, 붕대를 칭칭 감은 이마 아래로 굳게 닫힌 눈꺼풀이 잠을 자는 것처럼 평온하다.
츠카사는 병실에 누운 레오의 곁을 시간이 허락할 때마다 지켰다. 마음 같아서는 하루 종일 머물고 싶었지만, 당주의 일과 파일럿의 일을 모두 레오의 병실에서 처리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츠카사는 제 어깨 위에 실린 책임의 무게가 이렇게도 무겁게 느껴진 적이 없었다. 야속하게도 그의 손 위에는 가진 것만큼 지킬것이 많았다.
쌕쌕거리는 숨소리가 균등한 속도로 들려온다. 가끔 방정맞다고 츠카사가 면박을 줄 정도로 목소리와 웃음소리가 큰 레오였는데, 지금은 그 힘을 다 잃은 채로 위태롭기만 하다.
모두 운이 없는 거라고들 했다. 적이 폭격을 가했을 때, 레오는 하필이면 승강장 부두에서 작곡을 하고 있었다. 레오는 평소처럼 그가 사랑하는 작곡을 했을 뿐인데. 이기적인 신은 그 천재적인 재능을 질투한 것인지 한순간에 그의 영감도 작품도 곡을 쓸 수 있는 건강도 모두 앗아가 버렸다.
그에게 이딴 운명을 준 신이 정말로 존재한다면, 모두 부숴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츠카사는 재력과 힘, 모든 걸 가졌음에도 정작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약한 인간이어서, 결국 적을 소탕하는 전쟁에 직접 출전하는 것으로 복수의 방향을 틀었다.
츠카사는 레오가 탑승하던 나이츠 기체의 조종석, 왕좌를 물려받았다. 그가 언제나 말하던 ‘네가 준비가 되면, 그때 왕관을 물려줄게.’와는 전혀 다른 방식의 기형적인 계승이었다. 그에게 왕관을 건네줄, 그가 섬기던 왕인 레오는 순식간에 깊은 잠에 빠진 공주가 되어버렸다.
그렇다면 고작 당신의 기사이던 나라도, 직접 칼을 빼들고 당신을 재운 마녀를 처단하는 수밖에. 츠카사는 레오의 부상 이후 일어난 모든 전투에 참여했다. 출전하지 않아도 된다는 상부의 지시가 있어도 아득바득 전력이 되겠다며 전장에 몸을 던졌다.
삐삐삐-
손목시계형 호출기에서 출전을 알리는 알림소리가 울려댔다. 츠카사는 레오의 머리를 쓰다듬던 손을 멈추고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다녀올게요, Leader.”
당신이 다시 눈을 뜨고 그 태양 같은 미소를 보여줄 때까지 멈추지 않고 싸울 것이다. 당신의 손으로 왕관을 전해 받을 때까지, 나는 당신을 섬길 것이다. 이 끔찍한 악몽을 선사하고 당신을 끝없는 꿈 속으로 집어삼킨 마녀를 두 손으로 처단할 것이다.
츠카사가 레오의 늘어진 손을 두 손으로 들어 그 손등에 키스했다. 다치지 않고, 당신의 곁으로 돌아올게요. 나의 왕이시어.
왕관을 쓴, 기사의 맹세였다.
짧고 엉성한 글입니다...
전력 주제 보고 만우절AU랑 비벼 먹고 싶었는데, 저 말고 다른 분의 작품으로 비볐어야 했나 봐요.
주제도 AU도 너무 좋아서 숟가락 얹어 보았습니다. 예쁘게 봐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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